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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해설에서 음성해설까지: 국내 1호 화면해설 작가의 여정

2024년 6월 21일
4분 분량

저는 국내 1호 화면해설 작가입니다.

화면해설에서 음성해설까지: 국내 1호 화면해설 작가의 여정 기록 이미지 1

이 글은 좀 깁니다.

2024년 상반기가 거의 끝나는 시점이기도 하고,

제 인생의 챕터를 좀 마무리하고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기 위해

도장 하나 찍는 기분으로 써 내려갑니다.

2024년 상반기는 숨 가쁘게 보냈습니다.

2002년 처음 화면해설을 만나고

숨 가쁜 젊음을 보낸 것처럼,

올해도 그렇게 보낸 것 같아요.

화면해설과의 첫 만남

2002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에서

처음 화면해설 작가 일을 제안받고 시작한 일은

제 삶을 많이 바꿔놓았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화면해설 글을 쓰는 사람!

제 직업을 설명하려면 화면해설이 무엇인지 설명부터 해야 하는 사람!

쓰는 방법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제가 쓰는 글이 화면해설이 되는 사람!

몇 년이 흘러 작가들이 보충되고

1기, 2기 화면해설 작가가 꾸려지며

외롭게 일하던 곳이 북적북적해지는 경험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일주일에 제가 써 내야 하는 화면해설 대본은 제일 많았고

그래서 한시련 직원들이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길래 일을 제일 많이 하냐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존에 하던 작품에, 예능이나 코미디, 외화 등 새로운 장르가 추가되면

그것 또한 도맡아서 했기에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

늘 마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회식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저에게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봐 주셨습니다.

저는 무조건 회라고 말했는데, 의견을 수렴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알았습니다.

제가 말하면 회식 메뉴가 그대로 정해졌고,

회를 못 먹는 다른 작가들도 있었다는걸.

그 이후 전 아무거나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으로 화면해설 공부하러 가기

영국으로 화면해설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늘 탑을 유지하며 일하던 저에게

한국을 떠난다는 공백은 두려웠지만,

화면해설이 어떻게 연구되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화면해설이 왜 번역인지 진정으로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손에 쥐고 있던 것을 하나씩 놓았습니다.

꾸준히 진행하던 KBS 제3라디오도 그만두고,

화면해설 대본 작업도 최소한으로만 했습니다.

일주일에 네 편 ㅎㅎㅎ (저에겐 최소한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타국 살이는 힘들었지만,

목표가 있었기에 이 악물고 견뎠습니다.

귀국 후 박사과정

귀국 후 저에게 돌아온 건 견제였습니다.

제가 어떤 견제를 받았는지 다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무척 천천히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저조자도 눈치채지 못했어요)

공부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되었나 봅니다.

영국에 정착해서 돌아오지 말라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는 박사 과정을 밟아 더 연구하고 더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외대 대학원 과정인 영어 번역학과에 합격한 후 계속 공부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돌아온 것은 공부를 계속하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납득할 수 없는 말과

이렇게 공부하는 행동이 독단적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저는 더 이상 여기서 일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되묻던 그 순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던 그 사람의 냉랭한 말보다

질문을 하던 제 자신이 더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서 있던 방 안의 위치,

제가 멍하게 바라보던 책장에 꽂힌 책들...

그 순간은 여전히 제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말도 안 되는 고료를 받으며

헌신적으로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후배들마저 그런 환경에서 일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료 인상을 정중히 요구했습니다.

또한, 다른 작품의 모니터링을 무료 봉사처럼 시키는 관행에 대해서도

사례비가 지급되어야 한다고 함께 요청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단호한 거절이었습니다.

“너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사람 많다”

그 말은 뼈아팠고,

오랜 시간 쌓아온 제 마음을 허물게 만들었습니다.

“공부를 계속하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말”과

“고료 인상 거절”,

그 두 차례에 걸친 일들로 인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내가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결국 확신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한국에서 독보적으로 화면해설 제작을 하던 곳이라

그곳을 나온다는 것은 곧 생계의 막막함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불안함 마저 단단하게 붙들고 그곳을 나왔습니다.

후에 다시 일하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이상한 단서가 붙어서 더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들려온 소식이 있었습니다.

화면해설 작가들의 대본료가 인상되었다는 이야기였죠.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 자리에 제가 남지 않더라도,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

그게 어쩌면 제가 마지막으로

나의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참고 양보했던 일의 결과

제가 영국으로 유학 간 후 국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던, 저보다 늦게 화면해설 작가 일을 시작한 분이

본인이 화면해설 작가 1호라고 인터뷰를 하시며

(기사에 따르면) 자신이 미국에서 화면해설을 도입해 왔고

저와 한국적인 화면해설을 연구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과 한국적인 화면해설을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분은 당시 해당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한시련에서 화면해설을 도입하기 위해

미국에 두 연구원을 파견했다는 사실이 모든 보고서와 연구 자료에 남아 있는데도,

거짓된 내용이 버젓이 돌아다니더군요.

저는 단지, 누군가의 개인적인 주장이

한국 화면해설의 역사로 굳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 포함하여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입에 담기에는 실소가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 좁은 곳에 두 작가의 라인이 있는데

제 라인이 약하고 거의 없다시피 해서

다른 라인에 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고

제가 견디기 힘들어 공부하러 떠났다고 알려져 있더군요.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퍼트리며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화면해설작가분들께

누를 끼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라인이 없었습니다.

아니, 라인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유학길에 오를 때

저는 제가 일하던 곳에서 최고 정점에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제 위주로 돌아갔습니다.

제 말이 혹시 권력이 될까 봐

모든 후배 작가님들을 똑같이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했으며,

모든 분들을 좋아했습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형평에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화면해설과 번역학에 대한 호기심,

연구에 대한 열정이 이렇게 왜곡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무척 씁쓸했습니다.

참고 양보하고, 공론화하지 않았던 많은 일들이

때로는 상처로 다가와 저를 후벼 팠습니다.

저는 그저 열심히 살고, 열심히 대본 쓰고,

더 알고 싶고, 더 연구하여 더 좋은 대본을 쓰고 싶었습니다.

후배들에게도 더 좋은 강의를 하고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은 말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혹독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많이 아팠습니다.

박사 논문 디펜스

며칠 전 박사 논문 2차 심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합격입니다.

교수님들께서 축하해 주시며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하라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주책맞게 교수님들 앞에서 울어버렸습니다.

그간의 괴로운 일들이 정말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물론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논문도 마무리해야 하고 다른 마감도 있어서

여전히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내겠지요.

화면해설 아니고 음성해설

국내에서 저보다 많은 화면해설 대본을 쓴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 몸에 켜켜이 새겨진 모든 화면해설 글들이

다양한 장르와 매체, 공연 예술 분야까지

확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화면해설'이라는 용어 대신

'음성해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많은 글과 워크숍, 강의, 그리고 제작한 작품을 통해

왜 '화면해설'이 아닌 상위어인 '음성해설(audio description)'을

사용해야 하는지

꾸준히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기관과 단체, 주체에서 저와 함께해 주시고 계십니다.

공연예술계는 이미 음성해설로 자리를 잡았고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대구영상미디어센터도 함께해 주십니다.

접근성 콘텐츠 제작자와 연구자

이제 저는 음성해설을 넘어서

접근성 콘텐츠를 제작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음성해설뿐만 아니라 음성소개, 터치투어, 한글 자막 해설, 쉬운 글 등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강화 장치를 개발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접근성 매니저, 접근성 프로듀서 등 필요한 용어들도 개발했고

업무 범위도 설명해 드리고 있습니다.

접근성 콘텐츠 컨설턴트와 디자인도 합니다.

제 글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목소리는 아직 약하고 말할 기회도 많지 않습니다.

공론화하거나 공식적으로 알릴 수 있는 채널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저도 제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를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수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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